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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남 개인전,《닿을 수 없는 지점, 보이지 않는 시점_에트르타(Étretat, France)》에서 재현이란 노스탤지어

인상주의 대표화가인 클로드 모네(Claude Monet)를 비롯하여 그의 스승 외젠 부댕(Eugène Louis Boudin), 그리고 사실주의 대표화가인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에 이르기까지, 파리 근교 노르망디 해안의 코끼리 절벽과 바다는 그들의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최애 소재였다. 거센 바람에 부서지는 파도와 함께 이 절벽은 빛을 받으면 상아처럼 하얗게 빛난다고 해서 ‘코끼리 절벽’이지만 프랑스의 거장들에 의해서 재현된 그 곳은 단 하나의 이미지로 소급되지 않고 이 세상의 모든 시간을 함축하듯 무척이나 다양한 이미지로 묘사되어져왔다. 마치 언어가 포용하는 경계를 시각이미지가 무자비하게 확장해버리는, 아니 그 한계에 대해 문제제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 해안은 어떤 창조적 문학가에게는 단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특별한 한 인간의 생애를 통해 멋진 소설을 탄생시키기도, 어떤 여행가에게는 절대 잊지 못할 특별한 기억과 의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소설 속 주인공의 생애나 여행자의 에피소드는 에트르타의 바닷가와는 무관하게 독자적 스토리로 남게 된다. 작가는 마치 호기심 넘치는 여행자의 모습으로 또는 성지를 순례하듯 직접 에트르타로 가서 해안을 답사하고, 인상을 채집하여 2차원의 화면 <닿을 수 없는 지점, 보이지 않는 시점_에트르타(프랑스)>와 3차원의 조각을 그리고 비디오영상을 제작한다.

여수에서 태어난 작가 김재남은 여수앞바다를 풍부한 대자연의 어머니 품처럼 잉태의 시작이자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엄청난 흡입력의 공간으로 여러 시리즈를 통해 소환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 <닿을 수 없는 지점, 보이지 않는 시점_여수>를 마치 별자리를 그리듯 작가의 노스탤지어인 여수의 바다와 근대 화가들의 고향 같은 곳인 에트르타를 조심스럽게 이어본다. 그가 이 두 바다를 연결시키는 이유는 미술사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개념이었던 재현에 대한 문제제기를 위한 것이다. 보는 것을 너머 느끼는 것, 개별적 사유들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 그리고 그 생각들 하나하나를 떠나보내는 것, 작가는 그 모든 절대 닿을 수 없고,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그런 것들에 대한 갈망을 오래도록 해오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작가는 보는 것과 재현에 대해 깊이 사유했던 화가들의 고향, 예술가들의 고향인 에트르타로 가서 원초적 그리움에 대해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김재남은 말풍선 모양의 헬륨풍선이 낯선 공간에서 떠다니던 사진작업과, 검은 바닷가를 검정 100%의 목탄으로 화면에 비벼 착색시켰던 <사라진 풍경(Lost Landscape)>시리즈를 통해 이미지와 텍스트의 경계를 넘나드는, 언어적인 것의 시각적인 것과 시각적인 것의 언어적인 것이라는 역설적인 작업을 선보여 왔다. 사진프레임이 노출하는 텍스트 외에도 그 말풍선은 언어적 개입뿐만 아니라 심상과 사회문화를 포함한 주변의 환경을 관념화하며 여러 가능성을 담지 한다. 관객은 말풍선 속에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시간을 기입하게 된다. 반면 거친 파도의 검정바다는 특정 바다를 보고 있는 관객인 나를 잃어버리고 바다와 관련된 기억을 소환하게 된다. 이렇게 검은 바다는 가장 원초적인 절대적 공간이자, 바로 소멸과 생성의 장소로 이미지와 텍스트의 경계에서 시간성이 개입하는 의미 있는 곳으로 전환된다. 장소 특정적이면서 동시에 탈장소 특정적인 실험을 하던 작가는 동전의 양면 같은 다른 시선이 있음을 ‘외연도’라는 섬을 통해 이야기한다. 전시《Two Islands Project(두 개의 섬)》(2011)에서는 바다를 사실적으로 그린 흑백 목탄 페인팅에서 현장 오브제설치 사진과 동영상으로, 그리고 컴퓨터 그래픽에 이르기까지 여러 매체장르를 혼합하면서 연극적 연출력까지 발휘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전작업들에서 실험했던 예술적 실천을 끌어 모아 ‘재현’에 대한 – 다소 아카데믹해보이지만 – 끝판을 시도한다. 사실 색 면의 문제는 김재남 화면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왔다. 이번 새롭게 시도된 <색 면 시리즈>에서 컴퓨터의 시점은 인간의 눈이 구현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바다영상을 스크린 캡처(screen capture)하고 하프톤(half-tone)으로 조작한다. 이때 화면은 추상으로 전환되는데, 여기서 추상이미지는 주체, 의지, 무의식을 드러내는 방식과는 무관해 보인다. 그리고 작가는 다시 컴퓨터 언어에 의해 드러난 색 면들을 화면에 그대로 재현한다. 푸른색과 붉은 색의 대조로부터, 초록색이나 주황색 같은 중간계열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색 면들이 추출되는데, 이들은 작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화면에 재배치된다. 이 개입은 정치적으로 코드화된 재현에 대해 문제 제기와 함께 근대 화가들이 색 면의 배치를 고민했던 그것에 대한 오마쥬(homage)같은 것이리라.

이렇게 동시대성과 객관성을 탑재한 색 면들은 다시 광택 없고 불투명한 밝고 신선한 안료로 캔버스에 착색된다. 여기서의 재현방식은 색 면들 간 어떠한 일루전(illusion), 물질성(matierre)에 의한 조각적인 것, 시간성도 용납하지 않는 플랫함(flatness)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객관화된 화면은 전통적 재현이 아닌, 추상표현주의자들의 현전도 아닌, 마치 화면조정시간의 그것이나 커다랗게 깨져버린 픽셀처럼 불완전하고 무미건조하여 비인간성을 극대화한다. 그리고 이 색 면들은 결국 에트르타의 해안이나 여수 앞바다와의 연계를 무화한다. 작가의 작업과정이 드러내듯, 근대회화를 통해 재현에 대한 고민이 이룬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인 텍스트들은 작가가 고민한 이 화면 안에 모두 융합되어 있는 듯하다. 이는 모더니스트들의 회화를 통해 익숙한 목적 없는 합목적성의 동시대적 버전인, 해체를 통한 풍부한/다양한 완전체에 대한 갈망-노스탤지어를 김재남 만의 방식으로 해소한다.

그의 갈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2차원의 화면을 정육면체 퍼즐처럼 3차원의 공간으로 옮긴다. 그의 실험과 도전은 네버 엔딩(never ending). 3차원으로 재현된 <색 면 시리즈>는 인간의 시점과 함께 컴퓨터의 시점까지 무효화한다. 이것은 그냥 색으로 이루어진 실체, 색 면체이다. 또한 컴퓨터그래픽으로 재현한 영상작업 <닿을 수 없는 지점, 보이지 않는 시점-에트르타(프랑스)>은 하프톤으로 조작된 색 면들과 모네와 쿠르베가 그렸던 에트르타를 반복 교차시킨다. 그리고 에트르타에서 여수에 이르기까지 답사기록과 함께 평면 화면, 영상, 설치를 넘나들며 성좌(Constellation)를 완성시킨다. 최근 영상디지털이미지의 등장으로 회화의 위기를 몰아가면서, 붓질같이 작가의 노동과 재주로, 아니면 비물질성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그 가치를 의미화하고 있다. 반면 작가는 붓질, 표현력, 노동이 드러나는 어떠한 방법론도 거부하며 물질성을 부각시키지만 그는 역설적으로 엄청나게 노동집약적 작업과 세심함을 추구한다. 작가가 다양한 매체들로 개입하는 작업의 전 과정 속에 회화의 의미, 그 재현의 문제가 마치 노스탤지어로 작동하듯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이다.

오세원(씨알콜렉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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