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제2회 청주국제 현대미술전 ’90년대 다무라·마키 시대이후, 한일 현대미술·지금에 대하여’

한국작가 : 김종일, 문 곤, 김재관, 김태호, 박남희, 신중덕, 지석철, 손부남, 이종목, 김택상, 이용택, 박계훈, 이승희, 김성미
일본작가 : 최은경(CHOI, Eun-kyoung), 이가와 세이료(IKAWA Seiryo), 쿠시다 오사무(KUSHIDA Osamu), 모리모토 가야노(MORIMOTO Kayano), 데케우치 카즈(TAKEUCHI Kazu), 다나카 무츠지(TANAKA Mutsuji), 우노 가즈유키(UNO Kazuyuki), 야마모토 노부키(YAMAMOTO Nobuki), 요시나가 유타카(YOSHINAGA Yutaka), 요시오카 마사미(YOSHIOKA Masami)
전시기간 : 2015년 11월 5일 ~ 12월 5일
전시장소 : 쉐마미술관
관람시간 : 9:30 ~ 18:00 (30분 전 마감)
기획협력 : 日本, 株式會社 竹內精美堂
후원 : 충청북도, 청주시, 한국사립미술관협회, 외교부 (광복 70주년 공식기념행사 및 한일국교정상화50주년 기념행사) 주대한민국한일본국대사관



전시내용

제2회 청주국제현대미술전
『90年代 田村 · 眞木 시대이후、한일현대미술의 지금에 대하여』

이번 전시회는 제2회 국제현대미술전의 일환으로 개최하지만, 전시 내용은 『90年代 田村·眞木時代以後、韓日現代美術의 지금에 대하여』라는 주제를 갖고 시작하게 되었다. 종전이후 한국정부가 수립되고 금년이 한국과 일본의 복잡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양국 간의 새로운 우방관계로 출발하게 되는 수교협정을 맺은 지 50년이 되는 시간적 의미를 담고 있다. 해방 이후 한국국민은 일제의 침략과 지배에 따른 문화적 폐해를 극복하려고 수 없는 노력을 해왔지만, 한편으로는 종전 후 무서운 속도로 발전해가는 일본의 경제부흥을 간과할 수 없었다. 상황은 다르지만 한국과 일본은 모두 군사적으로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되고 정치적 구조도 서구 민주주의를 모델로 변화하게 된다. 그러한 현상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지만 경제적 환경은 한국은 6, 25동란을 겪게 되면서 가난을 면치 못하게 되었었다. 그러나 일본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동란의 수혜를 받고 세계의 제2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게 된다. 다시 언급하고 싶지는 않지만 일제식민시대 한국은 전통적 도시도 상당수 해체되고, 한글 사용도 금지 되고, 심지어 총독부 법령에 의해 창씨개명까지 강요받아 고유의 이름도 일본식 이름으로 바뀌는 수모를 겪으면서 36년의 식민시대를 가졌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치욕스러운 팩트(fact)가 많이 있지만 생략하고 이번 전시회의 의미를 새기려 한다.

20세기 초 조선의 미술은 총독부에서 주관한 ‘鮮展’(조선미술전람회}에 의해 근대미술이 시작되지만 해방 이후 현대미술은 서구미술과 일본현대미술의 영향을 동시에 받으면서 발전하게 된다. 이중섭, 박수근 이후 한국의 현대미술은 서구의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 일본의 모노하(物派)의 영향을 동시에 받으며 빠르게 발전하였다. 한국의 현대미술은 80년대 초부터 박서보(朴栖甫), 정창섭(丁昌燮), 하종현(河鍾賢) 등 새로운 현대미술운동 세력에 의해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민중미술이 등장하면서 또 다른 양상을 띠면서 발전하게 된다. 젊은 작가들이 파리, 뉴욕 등으로 진출하여 서구의 새로운 현대미술을 수용하게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도쿄(東京)로 진출하면서 단색화운동의 현대미술을 등장시키면서 한국과 일본의 현대미술이 활발하게 교류 된다. 이 당시 동경화랑(東京畵廊), 가마쿠라(鎌倉)화랑, 우에다(上田)화랑, 무라마츠(村松)화랑 등에서 한국작가들의 전시가 빈번하게 열리지만, 한편으로는 도쿄의 간다(神田) 지역을 중심으로 청년미술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다무라(田村)화랑, 마키(眞木)화랑, 고마이(驅井)화랑 등에서도 활발히 교류가 이루어졌다. 이들 화랑들은 이 당시 일본의 청년미술의 거점 화랑이 되었었는데 이 화랑의 대표가 바로 미술평론가 야마기시 노부오(山岸 信郞) 선생이다. 현재 일본에서 활동하는 모노하(物派)의 선구자 이우환 작가도 야마기시 선생과 각별한 관계를 가졌으며 한 때 다무라(田村)화랑에서 전시를 가졌을 만큼 일본의 주요 청년작가들의 활동의 중심 무대였다. 이번 전시회에 참여하게 되는 야마모토신쥬(山本伸樹)、다케우치가즈노리(武内カズノリ)、다케다히로시(竹内博)、모리모토가야노(森本加弥乃)、쿠시다오사무(串田治)、이가와세이료(井川惺亮)、우노가즈유키(宇野和幸), 요시오카마사미(吉岡まさみ) 등 현재 일본 현대미술의 중진(重鎭)의 위치에 있는 이들도 80~90년대 이곳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내가 야마기시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1981년 2월 하네다(羽田)공항에서였다. 내가 그 당시 모교 스승 하종현(河鍾賢) 교수의 소개로 야마기시 선생을 만나게 되고 고마이(驅井)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갖게 되었을 때였다. 마침 같은 시기에 마키(眞木)화랑에서는 김태호(金泰浩) 개인전이, 다무라(田村)화랑에서는 지석철(池石哲) 개인전이 열리면서 한국의 젊은 작가 동경전(東京展)이 도쿄신문(東京新聞)에도 게재가 될 만큼 도쿄미술계의 하나의 이슈가 되기도 하였다. 이 때 야마기시 선생과의 나의 만남은 나의 작가 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는 데, 선생과의 인연은 그가 운명하시기 직전까지 약 28년 간 지속되었다. 나는 마키화랑에서 몇 차례의 개인전과 내가 기획한 그룹전으로 ‘한국동세대그룹6인동경전’, ‘구조와 탈구조전’, ‘한국작가9인전’ 등 적지 않은 전시회를 기획하였다. 또한 야마기시 선생께서 기획한 전시로 ‘한국현대미술의 「今」3인 전’은 김종일(金鍾一 ), 문곤(文坤), 김재관(金在寬) 3인을 초대하여 기획하였던 전시였으며, ‘규율과 감성 2인 초대전’은 나가사키의 대표적인 현대미술 작가 이가와 세이료와 나를 초대하여 가진 매우 의미 있는 기획전이 이었다. 특히 1991년 야마기시 선생과 본인이 주도하여 출범하였던 ‘한일 현대미술 신세대작가전’은 1995년까지 일본 후나바시 세이부미술관, 청주국립박물관, 지바현립미술관, 청주예술의전당 미술관을 오가면서 대단히 역동적으로 가졌던 한일교류전으로 이를 계기로 한국과 일본 간의 젊은 작가 간의 교류를 촉진시키는 중요한 기폭제가 되었다. 내가 지금 가장 가까이 교류하는 일본작가들-요시나가 유타카, 다케우치 히로시, 우노 가즈유키 등이 모두 그 당시부터 교류해왔던 친구들이다. 또한 마키화랑에서 2인 전을 가졌던 이가와 세이료 교수는 나가사키 대학 교수로 있었지만 가장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교류를 갖고 있는 작가이다. 오래전부터 청주작가들과 나가사키 작가들과의 교류전도 우노 가즈유키 교수와 내가 공동 기획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청주와 교토(京都) 간에 2011년부터 열리고 있는 ‘한일현대미술의 지층’ 전시도 모두 야마기시 선생과의 인연에서 발전된 전시회라 할 수 있다. 또한 야마기시 선생과 동향<山形>으로 요시오카 마사미 작가가 긴자(銀座) 4町目에서 운영하고 있는 스탭(Steps)갤러리는 야마기시 시대의 후기를 열어가고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나는 지난 2012년 6월 도쿄 국립신미술관(東京國立新美術館)에서 큐레이터 두 명과 야마기시 선생과의 인연과 그 후 한일교류전의 활동과 선생의 한국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에 대한 인터뷰가 있었다. 인터뷰에는 한국인 인턴에듀케이터 마정연씨가 함께 했었다. 그 내용은 국립신미술관 자료로 보관되었다. 그 이전 2009년 야마기시 선생께서 서거하신 이듬해에 일본의 월간 미술평론지 아이다(ぁぃだ) 165호(2009년 10월 20일 발행)에 추모의 글 “나의 진정한 스승 야마기시 선생님!”(わが眞の恩師, 山岸 信郞)이 게재된 바 있다. 또한 2013년 발간된 저서 “다무라화랑의 노트”(田村畵廊ノ―ト, 山岸 信郞 著, 竹內 博 發行)에는 ‘센다이·대구(仙台)현대미술교류전’, ‘지바·청주(千葉·淸州)현대미술교류전’의 기획 활동과 ‘한국남부현대미술전’의 강연자로 참여하는 등 한일 양국 현대미술의 교류증진을 위하여 노력한 선생의 활동이 구체적으로 수록되어 있다.

선생께서는 서거하기 2년 전 2006년 봄 한국에 오셔서 나의 고향 청주에서 약 3개월 간 거주하셨다. 도쿄의 화랑을 모두 정리한 후 휴식 겸 한국어 공부를 할 겸 한국에 오셨다. 그리고 나와 상의한 후 청주대학교 평생교육원에 한국어회화 교육과정을 신청하고 한국어를 배우려고 많은 애를 쓰셨다. 사실 선생님은 좀 더 오랫동안 청주에서 머물면서 저와 함께 지내기로 생각하셨는데 도쿄에 계신 부인께서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그 해 여름 급히 일본으로 귀국하셨다. 1년 동안 부인의 수발을 들어주셨지만 부인은 운명하셨다. 그 후 약 1년이 안 되어서 선생께서도 세상을 떠난 것이다. 선생께서는 그의 저서 “田村畵廊ノ―ト” 부제 ‘어느 바보의 일생(あるアホの一生)’에 “신념과 도그마, 사회는 공동체라 하는 인식이 아니다. 예술가 모두에게로, 예술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상대적인 현상으로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예술은 예술가의 독단만이 아니고 사회적 현상의 메아리 이다.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는 2010년 8월 긴자2정목에서 있었던 야마기시 선생 추모 2주기에 참석하였다. 약 100평정도 되어 보이는 행사장에 현재 일본화단을 움직이는 원로대가들이 운집하였다. 한국작가를 대표하여 추도사를 낭송하였는데 마음이 편하질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요시오카 마사미 작가와 함께 야마가다(山形)시에 있는 야마기시 선생의 본가를 방문하고 바로 옆 근처에 선생의 묘지를 참배하였다. 한국 청주를 다녀가신 후 4년이 지나 선생과 나는 묘비 앞에서 만날 수밖에 없었다. 선생과 나와의 30년간의 인연은 이렇게 끝났지만 결코 끝나지 않은 일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평생 선생을 곁에서 모셔왔던 다케우치 히로시(竹內 博) 작가가 평소 집필해왔던 선생의 원고를 정리하여 “다무라화랑의 노트”로 발간하였다. 한국작가 중에서 누구보다 선생의 사랑과 교류가 많았던 내가 할 수 있는 일, 아니 꼭 해야만 해야 할 일은 이번 전시회를 갖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선생께서 내가 미술관을 설립하고 운영하고 있는 줄 알게 되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궁금하다. 선생께서 서거하신지 벌써 7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선생의 숭고한 미학정신과 한국과 일본 간 현대미술교류의 꿈은 우리들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발전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청주국제현대미술전 『90年代 田村·眞木時代以後、韓日現代美術의 지금에 대하여』는 한일 현대미술의 역사에 가장 아름다운 전시회로 기록되어질 것으로 믿는다.

글/ 미술학박사, 쉐마미술관관장 : 김재관

Categories

2015년 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