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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수 개인전 ‘지나가다’

참여작가 : 임은수
전시 기간 : 2013년 11월 19일 ~ 2013년 12월 8일(월요일 휴관)
전시장소 : 쉐마미술관
관람시간 : 오전 9시 30분 ~ 오후 5시 30분 (30분전 입장 마감)



전시내용

영상과 기억을 ‘새겨 넣은’ 임은수의 드로잉

현대미술가 임은수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충북의 시골, 음성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청주에서 중등학교를 다니고 대학을 나오고 결혼을 하였다. 또 이곳에서 교편생활을 하고 자식을 낳고 살아왔으니 그는 청주사람이라 함이 좋을 성 싶다. 이곳에서 근 20년차 선배 작가로 대학생활 이후의 그를 지켜본 필자로서 그에 대한 몇 가지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임은수는 나와 사제(師弟)로서의 일체의 연(緣)이 없기 때문에 나의 제자는 아니다. 그러나 청주의 상징적인 현대미술 그룹인 ‘애스펙트’ 동인회(1988년 필자가 창립함.)를 통하여 2,000년 이후부터 그의 작품을 접해 왔고, 몇 차례 무심갤러리 기획전에서도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매번 전시회마다 항상 새롭고 신선한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그의 작업에 대한 열정은 그 후, 2004년 일본 나가사키시(市)의 문화예술센터 ‘브릭크 홀’ 초청 특별전에 청주의 젊은 작가 다섯 명 중 한 사람으로 선발되어 「2004[ima]나가사키로부터」 전에 참가하면서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의 작품이 어떻게 해야 최대한 효과를 갖고 전시할 수 있을까? 그는 굉장히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 경험하는 해외 여행지 일본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게 느끼면서 마치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컬럼버스처럼 호기심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생각이 단순하고 솔직하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려는 성격의 소유자로 보였다. 모든 것을 취하려는 욕심이 없고 자신에 필요한 것 이상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 당시 그의 작품은 반투명의 비단 천에 수를 놓아 이미지를 만들고 설치를 하고, 생명을 감싼 자연의 원형질 같은 오브제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조금은 구체적인 형상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 당시 그의 작품에 대하여 일부 평론가들은 “임은수는 여성의 관능과 감각이 배어 있는 페미니즘 형식을 취하는 작가이다.” 라고 평하였다. 당시의 작품들은 부드러운 비단 천을 사용하고 다분히 여성의 관능과 감각에 관한 것들이었고, 임은수의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이 두드러지게 드러나 보였기 때문에 그렇게 비평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 후, 내가 그에게서 발견한 특징들은 아주 평범한 것들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동시에 즐기기에는 쉽지 않은 것들이다. 혼자 무심천변을 걷기를 즐긴다. 무심천변의 자연스러운 풀 섶을 영상으로 담기를 즐긴다. 그뿐 아니라 시내 한복판에서 아파트까지 1 · 2km는 예사로 걸어서 귀가한다. 칼국수를 즐기면서 혼자 있기를 좋아하지만 스스로 믿음의 확신을 느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특징이 있기도 하다. 그는 주변의 풍경을 사진으로 스케치하는 것을 즐기는데 그 솜씨가 대단하다. 그의 사진 스케치를 가끔 볼 수 있었는데 그의 뛰어난 앵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임은수의 캐릭터를 형성하는 것 중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영화보기’를 주목하고 싶다. 그는 지독한 영화광(映畵狂)이다. 보통사람이 한 달에 한 편도 볼까 말까인데 그는 하루에 세 네 편의 영화를 볼 정도로 영화 보기를 즐긴다. 어쩌면 그는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기보다도 영화관에서 영화보기를 더 즐기는지 모른다. 그에게 영화란 간단치 않은 것 같다. 그림은 정지된 이미지의 한 장면을 보는 것이라면 영화는 필름이 돌기 시작하면서부터 정지할 때까지 모든 움직이는 이미지를 보게 된다. 그래서 그림은 사물을 ‘그려 넣는 것’(description)이지만, 영화는 움직임을 ‘새겨 넣는 것’(inscription)이라고 한다. 또 영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화면 속에서 어떤 움직임도 선별하지 않고 보기 싫은 것, 흔들리는 것, 포커스가 맞지 않은 것, 수상쩍은 것, 숨겨지지 않고 우연히 찍은 것까지 모두 받아들이게 된다. 임은수의 성격의 특징은 바로 주변을 그려 넣는 것이 아니라 영화처럼 자신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새겨 넣고 있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영화적 특징들이 임은수 회화의 양식적 특징으로 흡수되면서 그의 회화는 억압적 체제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반 모더니즘적 성격을 띠게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작품의 특징들이 내부적 요소보다는 외부적 요소와 맺는 관계를 중시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모더니즘 회화가 자신만의 고유한 형식을 탐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고유한 자아를 축소했다면 임은수는 늘 자신을 둘러싼 외부 환경과의 관계를 일깨우는 탈 모더니즘적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러한 특징들은 그의 ‘드로잉’에서 확연하게 나타나면서 몇 단계 변화과정을 거치고 있다. 그동안 그의 작품 명제들은 생명의 잉태와 성장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던 ‘자라다’ 시리즈(2006년 경), 바람과 공기의 파동을 표현하고자 했던 ‘바람의 풍경’ 시리즈(2008년 경), 사물의 진동과 의식의 해체를 통한 자신의 무의식화 되어가는 과정을 표현한 ‘의식의 해체’ 시리즈(2010년 경), 본성을 가린 허울을 벗어내는 과정을 표현한 설치 작품 ‘빛-그 깊은 의’ 시리즈(2011년 경), 그리고 최근 작품으로 자신의 내면을 해체하고 더 큰 자아를 형성해가면서 흔들리는 자신의 심리상태를 나타낸 ‘지나가다’ 시리즈(2012년 이후)로 변화와 발전을 갖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도 그의 일관된 생각과 표현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모더니즘의 형식에서 볼 수 있었던 선, 색, 명암, 양감 등이 모두 축소되고 단순한 색상으로 화면을 처리하고 있다. 특히 2012년 이후 작품 ‘지나가다’는 시간, 바람, 빛, 소리 등 물리적 현상들에 의해 발생된 자신의 감정과 심리적 현상의 흐름을 다분히 무의식적 상태에서 화면에 단순한 색상의 물리적인 ‘선(線)’으로 표현한 것 이라 생각한다.

드로잉은 ‘선’을 재현과 일루전의 공간에서 해방시켰기 때문에 이차원 회화의 평면성을 획득하게 하는 추상 행위이자 회화의 개념화라 할 수 있다. 미술사에서 드로잉은 근대 드로잉의 개념을 설정한 쥬카리(Federico Zuccari)의 고전적인 두 가지의 개념에서 ‘내적 개념’의 경우와 ‘외적 개념’의 경우로 구분하고 있다. 여기서 드로잉의 의미를 재료를 통해 형상을 만들어내는 행위와 신이 만든 피조물인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 객관적인 상응관계로 존재하는 행위의 표징으로 정의하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선’은 자연에 없는 것으로 지적(知的)대상으로 이해하게 된다. 임은수 작품 ‘지나가다’는 그 자체가 ‘내적 개념(disegno interno)’의 ‘드로잉’으로 볼 수 있으며, 그의 ‘드로잉’의 ‘선’은 그의 감정과 유희가 ‘지나가는’ 통로인 것이다. 고전적 의미의 드로잉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드로잉의 ‘선’은 지각과 오성으로서 사물의 윤곽을 나타내는 문제에 집착했다면, 임은수의 ‘선’은 ‘선’ 그 자체가 추상인 것처럼 그의 감성으로서의 세계를 나타낸 ‘개념적 추상’의 세계의 ‘선’이라 할 수 있다. 드로잉의 세계가 그러하듯이 그 역시 ‘세계를 자신의 정신 한 가운데 두고’ 이것을 2차원의 평면에 선묘로 대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떤 재현적 표상이나 일루전의 도움 없이 ‘線’을 형식적 표현 수단으로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드로잉을 ‘개념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밝혔듯이 임은수의 작품은 유연하고 부드러운 재료를 이용하는 표현기법 때문에 ‘페미니즘 류(類)’의 작품으로 해석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이야기하는 페미니즘은 본래 혁명적인 여성예술가들에 의해 출발하였기 때문에 여성성에 있지 않고 ‘성(gender)’을 초월하며 성차별을 없애는 정치적 목적에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진실에 비견해 볼 때 임은수의 작품은 페미니즘적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차라리 데리다의 차연(差延)의 의미에 담고 있는 비결정적이고 비 종결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는 ’임은수의 회화‘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은 혁명적이지도 않고, gender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영화적이고 드로잉적이기 때문이다.

임은수는 자신의 작품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호기심의 촉수로 끝없이 외계를 탐색하고 외계가 자아를 노크하여 침투하고 일치하려는 흔들림의 순간, 흔들리며 간신히 균형을 잡아 나를 열소 해체하여 더 큰 자아를 형성해나가는 관능에 관한 해석이다.”
“바람으로 일렁이는 공기의 파동, 온갖 소리로 출렁인다. 대상에 닿아 흔들리는 진동, 빛의 찬란한 파장으로 반응하는 사물들, 공간은 다양한 이유로 출렁이며 사물은 이에 반응한다. 연약한 속살을 드러내며 미동에도 진동하는 나의 끝없는 흔들림 · · · ”

그의 최근작들은 ‘한지(韓紙)’ 위에 한국화 안료로 그린 드로잉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설치작품의 경우에는 비닐과 아크릴칼라를 사용한다. 또는 코바늘로 실을 엮어서 굵은 줄을 만들기도 하고, 두꺼운 모피 의상을 해체하여 활용하기도 한다. 설치의 경우에도 모두 그의 드로잉과 일맥 한다.
대부분 그의 드로잉은 반복되고 중첩된 선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마치 무의식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묘법처럼 보인다. 감정의 몰입에서 이루어지는 그의 작업은 화면을 긋는 붓의 이동이라기보다 공간을 나르는 퍼포먼스이며 오토마티즘이라 할 수 있다. 영화 화면이 그러하듯이 그의 드로잉은 시간이 흘러가고 연속되는 현상의 표현으로 보이며, 화면 속에서 그의 선의 동작들은 움직임과 휴식 그리고 계속해서 진행되는 행위가 일어나는 공간인 것 같다.

임은수가 생각하는 세계는 페미니즘의 사상이 아니고, 단순한 자연에 대한 스케치가 아니라, 그가 대면한 화면의 공간은, 이우환(李禹煥)이 첫 대면한 캔버스가 무한대의 우주 공간이듯이, 이불(Lee Bul)이 드로잉 풍경이 몇 십만 년 후에 나타날 지구의 비참한 모습을 상상했듯이, 그의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는 충동, 감동, 표상들을 무의식적으로 표현하면서 외계와 자신과의 대화를 이루게 하는 초자연적 세계라고 생각된다.
레비-스트로쏘(Lévi Strauss/프랑스 인류학자)는 “무의식은 타인과의 교환을 가능케 하며, 상징적 사유를 정초한다.” 고 하였다. 임은수의 무의식 세계로의 몰입은 오히려 자신의 상상의 세계와 표상세계의 다양한 어휘들로 이루어진 영상과 기억의 저장고 일지 모른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땐 무의식의 진공 같은 공간감을 느끼게 하고, 어느 땐 앙리 루소의 수풀이 무성한 정글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 때에는 그에게서 초인적 신기(神氣)를 느끼게도 한다. 특유의 분위기를 지닌 임은수는 그 모든 것들을 현대미술의 개념 언어의 기호로 집약시켜 자신의 작품에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작품을 향한 그의 열정은 회화와 설치와 퍼포먼스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현재 청주 여류작가회 회장이며 곧 50을 바라보는 그는 이제 우리 지역 여류작가의 리더뿐만이 아니라 한국 현대미술에서도 빛나는 작가의 위치에 이를 우리 지역 출신의 자랑스러운 작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글 / 김재관 (미술학박사, 쉐마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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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