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운 기획초대전 ‘정원의 자장가’

이고운 기획초대전
정원의 자장가
Lullaby of the Garden
2022. 12. 08 – 2023. 01. 21
2022 쉐마미술관 이고운 기획초대전 – 정원의 자장가
글 / 쉐마미술관 큐레이터 한영애
이고운 작가는 그동안 <구름나무>, <이상정원> 연작을 통해 공원, 숲, 바다와 같은 실재하는 공간에 본인의 정서를 투영하여 치유의 이상향에 대한 심리적 풍경을 드로잉, 회화, 애니메이션 등의 매체를 통해 표현해 왔다.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고 갈아내는 반복의 과정으로 독특한 질감을 연출하는 채색법과 장지에 은은한 반짝임을 더한 뒤 그려지는 섬세하고 따듯한 색조의 화면은 작품의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또한 손으로 그려진 수백 장의 드로잉을 종합, 편집하여 제작하고 나지막한 허밍으로 사운드를 입힌 애니메이션에서는 관객과의 정서적 교감을 시도한다.
이고운 작가의 작품은 지극히 비현실적인 동시에 친근하게 느껴지며, 우리가 언젠가 한 번쯤 꿈에서 본 듯한 작품 속 이미지는 감상자의 꿈, 상상, 추억들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정원의 자장가” 전시는 그동안 작가가 주목해 온 밤의 정원이라는 시공간을 자장가의 은유를 통해 풀어냈다. 마치 어린아이를 의식의 세계에서 꿈의 세계로 인도하는 나긋한 자장가의 멜로디처럼 작품을 통해 일상의 논리와 긴장을 잠시 내려두고 부드러운 휴식을 경험할 수 있는 전시이다.
상상, 몽상, 그리고 무한의 시공간
평론글 /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이문정
이고운의 작업은 삶의 하루하루에서부터 시작한다. 일상을 고스란히 기록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에 머무르며 무엇을 보고 느끼는지가 중요하다. 작가는 동시대의 첨예한 담론, 거시적인 이슈들과는 살짝 거리를 두고 외부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상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를 담으려 노력한다.
처음에는 세계 속 존재인 자신에게 집중했다. 먼발치의 눈밭 그리고 여성. 멀리 보이는 바다와 그 위의 사람들. 자연을 배경으로 생성되는, 현실과 환상이 맞닿은 듯한 몽환적 분위기는 이고운의 작업 초기부터 최근까지 지속되는 특징이다. 달무지개뿐 아니라 비와 눈, 구름 같은 날씨에 관한 기억, 봄과 겨울 같은 계절의 분위기, 현실임에도 현실을 벗어난 것 같은 낯선 풍경 등은 작가의 내면과 외부 세계를 연결 짓는 상상의 시작점이 된다. 눈과 비를 배경으로 ‘구름나무’와 하나가 된 얼굴을 가진 사람들은 구름처럼 자유로운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상상의 공간에 머무르는 것 같다. 정체성을 가장 명확히 드러내는 얼굴이 사라진 존재는 사회 규범과 통념이 규정한 한정된 개인을 벗어나게 한다. 사실 눈이 쌓이고 비가 오는 상황들은 일상에서 자주 일어난다. 그러나 신비로운 변화들이다. 무엇보다 눈과 비는 현실 속에서 현실을 벗어나게 해준다. 선명한 시야를 방해한다. 경계를 흐릿하게 해 여지를 남기고 정서에 영향을 끼친다. 세상은 명명백백한 구획을 요구한다. 그러나 모든 구획을 지워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현실에 닿은 두 발을 살짝 떼고 몽상의 시간을 갖게 하는 비와 눈이다. 미지의 시공간은 그렇게 상상된다.
결혼하고 어머니가 된 뒤 이고운은 아이들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듯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특별히 의도하거나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된 여성의 노동이나 현실적 고충을 다루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자기에게 집중할수록 작가의 머릿속에는 아이와 관련된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물이 흘러가고 계절이 바뀌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작품 속 장난감은 상상을 직조하는 훌륭한 소재로 작동한다. 아이와의 기억을 담은 작품들이 밤을 배경으로 하는 이유 역시 상상과 연결된다. 눈과 비가 오는 시간이 그렇듯 밤에는 날카로운 경계가 흐릿해진다. 신비로운 밤의 기운은 나른한 편안함을 제공하고 낮 동안의 번잡함과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운 고요함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밤은 잠을 자고 꿈을 꾸는 시간이다. 작가는 아이가 어떤 꿈나라에 들어설지 상상해본다. 작가는 꿈의 시간을 그려본다. 아이의 꿈과 작가의 상상이 교차한다. 작가는 그렇게 몽상에 빠진다. 몽상은 생각하는 자아(cogito)의 활동이다. 몽상가들은 존재의 아래, 무(無) 위에 위치한 영혼의 상태이자 현실과 비현실의 매개 지대를 탐색하며 시적 몽상을 유발하는 의식의 주인이다. 몽상은 무의식의 활동인 꿈이 아니다. 몽상은 의식의 빛이 그 안에 지속되는 정신 활동이다. 의식은 몽상을 지탱하고 방향을 인도한다.
한편 이고운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정원이나 풍경들 역시 일상에 존재하지만 일상을 벗어나는 것 같은 환상적인 상황, 여행지에서의 경험 등과 관련된 기억에 근거한다. 이고운이 창작하는 공간은 낭만적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와 같다. 현실 공간과도 다르고, 유토피아도 아닌 헤테로토피아는 일상과 단절된 특이한 공간이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양립할 수 없는 이질적 요소들로 구성된 공간이다. 작가는 이번에도 현실과 상상, 실재와 환상이 연결되는 경계를 넘나들며 부유한다. 현실과 비현실이 겹치는 순간이 반복되며 작가적 상상의 여지는 더 커진다.
이처럼 이고운이 초기부터 꾸준히 추구하는 작업 방식, 태도, 그리고 완성된 작품들은 모두 상상과 긴밀하다. 이미지의 지각과 함께 상상은 시작된다. 작가의 상상력은 지각 작용으로 받아들이게 된 이미지들을 변형시킨다. 외부의 공간과 내밀의 공간은 서로를 고무하며 자라난다. 객관적 사실보다 더 많은 가능성의 여지를 주는 시적인 공간이 만들어지고 내밀의 공간은 팽창한다. 상상력은 현존하는 이미지에서 보이지 않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기에 작가는 이미지의 깊은 곳에 숨겨진 무언가를 발견하고 표현한다. 그런데 상상력의 주된 활동 무대인 몽상은 특정한 문제에 집중해서 논리적인 해결을 찾는 사색과 다르다. 그것은 뚜렷한 의지 없이 상상력의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정신 활동이다. 그러나 꿈을 꾸는 것 같은 무의식의 상태가 아니라 의식의 빛이 존재하는 정신 활동이 몽상이기 때문에 작가는 생각하는 주체로서 자신을 중심에 놓을 수 있다. 완전한 무의식도, 완전한 의식도 아닌 상태의 활동, 합리주의적인 현실에 속하지 않는 비현실의 기능, 그러나 현실 세계에 뿌리를 갖는 것이 몽상이다. 그렇게 조금은 멍한 듯 편안한 상태에서 빠져드는 공상 속에서 작가는 느슨하게, 자연스럽게 이미지를 떠올리고 몽상한다. 그리고 작품에 펼쳐낸다.
이미지를 받아들여서 독자적으로 변형할 수 있는 상상력은 보편성을 갖기에 이고운의 작품을 보는 우리도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다. 몽상의 철학적 범주라 말할 수 있는 무한은 우리의 내부에 있다. 현실의 삶이 억제하고 조심성이 멈추게 하지만, 고독 가운데에서 계속되는 존재의 팽창과 연결되는 그것. 작가(우리)는 무한한 세계 속에서 무한을 꿈꾼다. 그렇게 “지적 노고로부터 자유로운, 스르르 시작하고 끝나는” 작품이 선사하는 따뜻한 시공간, 무한의 세계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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