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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적들



《궤적들 Trajectories》

2021. 10. 08. – 2021. 11. 14.
• 참여작가
김윤섭 (@kimyunseob_kr)
김현석 (@p424top)
요한한 (@posturemoderne)
정석우 (@seokwoochung)
• 쉐마미술관 (청주시 청원구 내수로 241번지)
• 9:30-18:00 (매주 월요일 휴관)
• 기획 : 한영애 (쉐마미술관 학예실장, 부관장)
• 주최 : 쉐마미술관
•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산실 공간지원




작품을 눌러 작가의 Detail 보기

김윤섭

Kim Yunseob

김현석

Kim Hyun-Seok

요한한

Yohan Han

정석우

Chung Seokwoo


‘모든 것은 움직임’

한영애 (쉐마미술관 큐레이터)

모든 것은 움직임 – 운동이라는 테마로 나를, 세계를 진동시킨다. 여태껏 현대미술의 가장 강력한 화두 중 하나인 운동성은 세계를 규정하고 미학을 규정짓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우리는 이러한 운동을 미학의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예술가들을 소개하려 한다. “궤적” 이라 이름 지어진 전시 제목처럼 운동을 하나의 드로잉으로, 또 다른 차원의 미적 운동을 자행하는 작가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정석우 작가의 커다란 스케일의 추상회화는 작가 자신의 육체를 넘어 더 넓은 차원의 운동을 보여준다. 정석우는 이러한 운동적 특성이 가득한 화면-회화를 무색무취의 전시장을 벗어나 거대한 스케일의 회화가 넓은 자연과 세계와 만나게 되었을 때, 수많은 운동을 머금고 있는 대자연과 그 운동성을 견준다.


요한한 작가는 자신의 모든 움직임을 기록하고 그것을 음악적 요소로서 기능하게 한다. 요한한의 모든 휘저음과 궤적들은 즉석에서 디제잉 되며 그러한 디제잉의 움직임 역시 하나의 요소로서 아름다운 음악적 선율을 만들어 낸다. 그로 인해 요한한의 디제잉은 자신의 궤적을 그리는 하나의 선율이며 하나의 형이상학적 드로잉의 차원으로 발전한다. 자신의 모든 움직임을 선율과 드로잉으로 남기는 요한한이 어떠한 궤적을 남길지 궁금하다.


김윤섭 작가는 유튜브라이브 영상을 틀어 놓고 커다란 캔버스에 궤적을 그린다. 온라인상에서 그의 궤적을 볼 수 있지만, 이상하게 그의 그림은 볼 수 없다. 그는 물리적 스튜디오에서는 보이지만 온라인에서는 볼 수 없는 그림을 그린다. 블루페인팅 시리즈 Blue Paiting series 라 물리는 그의 작업은 크로마키 효과로 자신의 그림을 공백으로 보이게 하고 그 흔적과 궤적만을 보여주지만, 전시장에 전시될 작품들은 구체적 형상을 가진 채 두 가지 존재성을 보인다. 그의 궤적이 어떠한 작품을 남길 수 있을까?


김현석 작가는 이미지의 뒤에 놓인 어떠한 운동성을 찾아낸다. 이미지를 이루는 여러 가지 요소들 출처와 쓰임 변형과 왜곡 등은 그의 가장 큰 관심사이다. 이미지의 구조와 그 변형의 운동과 움직임을 찾아내려는 그의 집요함은 물리적 특성을 다시 머금고 전시장에 놓여지고 걸러진다. 이미지의 역사 자체를 하나의 궤적으로 삼고 작업하는 그가 어떠한 신작을 만들어 낼까?


쉐마미술관은 정석우, 요한한, 김윤섭, 김현석 작가의 휘적거림과 들숨, 날숨, 추적, 등의 움직임에 집중하려 한다. 자연과 함께 자리잡고 있는 쉐마미술관에서 네 작가의 궤적을 보여주고 그것을 미학적 차원에서 전시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 우리는 과연 세계가 품고 있는 수많은 움직임을 하나의 미학으로 제시할 수 있을까? 를 기대해 보는 전시이다.


<서로 다른 궤적들의 조우>

신승오 (페리지갤러리 디렉터)

궤적은 사물의 움직임을 알 수 있는 자국이나 자취를 이르는 말이자 어떤 일이 이루어진 과정이나 흔적을 말한다. 이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면 이미 주된 대상이 이미 사라져 버리고 남겨진 단서들로 이루어진 것을 재구성해야만 그 본질을 알아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렇기에 궤적은 명확하게 그 대상 자체를 밝혀내기보다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이는 다분히 결과보다는 과정 중심적이며, 어떤 흔적을 통한 비시각적인 구조를 드러내어야 하는 동적인 행위를 유발한다. 이러한 단어는 시각 중심의 것들을 생산해내는 시각예술에 걸맞지 않아 보이지만, 미술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우리는 시각적인 감각을 이용해 보게 되는 작품들의 표면에서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숨겨진 의미와 같은 것을 감지해내고자 하는 감상법에 익숙한 것도 사실이다. 또한 현대미술에서는 우리의 시각 너머에 있는 내면에 존재하는 무의식을 시각화하거나 눈앞에 있는 고정된 대상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것을 들추어내고자 하는 시도와 실험들이 전개되어 왔다. 이는 정형화된 세상 다시 말해 고정된 틀과 규칙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의 구조 속에서 획일화된 관점으로 중심적인 세상을 보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주변의 것으로 시선을 확장하는 행위이다. 현대미술에서의 이러한 접근은 우리의 세계를 직선적인 흐름으로 만들어지는 세상이 아니라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알 수 없는 유동적인 세계로 인식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이를 통해 그 본질을 시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창조적인 매개들을 생산한다. 이렇듯 이번 《궤적들》 전시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작가의 고민을 살펴볼 수 있는 김윤섭, 김현석, 요한한, 정석우의 작품을 볼 수 있다. 필자는 이번 전시의 참여하는 작가를 네 개의 궤적으로 구분하고 이들이 자신들의 작업에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예술이 가진 의미의 궤적

김윤섭은 하나의 방식과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회화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꾸준히 실험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는 이와 더불어 회화에서 벗어난 작업을 선보이기도 하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맥락에서 <발굴 현장/블루>의 작업을 선보인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작가가 하얀 배경에 파란색으로 그리고 있는 회화 앞에 발굴 현장에서 바로 꺼낸 것과 같은 입체 조각이 놓여 있다. 이 조각은 부분적으로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전시장 한편에는 모니터를 통해 작가가 작업을 하는 과정이 유튜브를 통해 라이브로 방송되고 있다. 작가는 델포이의 조각상과 함께 이 발굴을 지휘한 학자들과 노동자들이 뒤섞여 있는 사진에서 모티브를 가지고 왔다고 한다. 여기서 작가가 주목한 것은 예술이 가진 의미는 어떻게 발생하고 무엇이 예술이 되는가이다. 그것은 시간, 공간, 그리고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가치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의미에 관련되는 것으로 어떤 명확한 기준이 있지 않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예술이라는 것은 과거에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는 현재의 관점에서 다시 의미를 부여받기도 하며, 어디에 놓여 있는지, 그리고 누가 제작하였는지 같은 그 대상 자체보다는 외적인 혹은 주변의 단서와 정보들에 의해 의미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작가는 발굴 현장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면서 유령과 같은 이런 실체가 없는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평면, 입체, 색과 조형, 그리고 현장에서 전시 기간 동안 작업을 진행하는 등의 여러 단계를 설정하였다. 거기에 더해 그가 사용하는 파란색으로 크로마키 효과를 사용하여 실제의 공간의 모습이 지워진 것을 방송과 모니터에 송출하면서 실제와 가상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렇게 이번 그의 작업은 실제의 공간에 방문하지 않으면 온전한 작품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실제 공간에 들어선다 하더라도 계속 변해가는 과정의 한 단면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이는 예술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어떤 단계를 거치면서 계속해서 변해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그가 보여주는 이 작품은 예술이 가진 의미의 궤적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꺼풀을 걷어내면서 비로소 나타나는 눈앞에 있는 대상이 가진 표면을 있는 그대로 읽어 내어야 한다는 작가의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미지의 궤적

김현석은 우리가 화면에서 보는 이미지들을 그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미지의 구조에 대해 관심이 있다. 그는 전통적인 회화와 사진에 이르기까지 2차원적인 평면에서 구현되는 이미지에서부터 지금 우리가 스마트폰, 노트북, TV와 같은 전자장치의 화면에서 보이는 이미지까지 다양하다. 이렇게 어떤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속성인 표면적인 형태에서 나오는 의미와 함께 이들을 우리가 어떻게 소비하여 왔는지에 대한 다양한 층위에서의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ASSY>는 이미지와 텍스트와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는 자판을 통해 화면에 텍스트를 입력하게 되는데, 작가는 이러한 한글과 영문의 텍스트 조합을 자신이 만들어낸 이미지로 만들어진 폰트를 대입함으로써, 관객들이 자판으로 문장을 써나가면서 새로운 이미지가 획득되는 구조를 만들어 내었다. 이는 자음은 색상, 모음은 패턴으로 밝은 패턴과 어두운 패턴으로 구분되는 이미지들의 표가 만들어진다. 물론 작가는 이를 실행하는 관객들에 의해 만들어진 다양한 이미지를 다시 수집한다. 이렇게 관객이 작가의 작업에 참여하게 하는 구조는 ‘나’의 의지로 만들어가는 이미지 혹은 직관적 판단으로 만들어지는 이미지에 대한 실험이다. 관객들은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면 자신이 입력하는 문장이나 단어가 어떤 이미지로 나타나게 될지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작가의 규칙을 머릿속에 인지하게 되면 오히려 문장보다는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위해 문장 구조의 의미를 벗어나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자율성을 획득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작업의 구조는 우리가 쉽게 우리에게 익숙한 법칙에 연동할 수 없는 비가시적인 이면의 내부 규칙을 보여준다. 이렇게 그가 드러내는 이미지의 궤적은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단순한 표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그것’이 ‘그것’으로 보이는 우리 눈에 드러나지 않는 규칙과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이미지를 어떻게 수용하고, 재생산하는지에 대한 소비의 문제에서부터 어떤 이미지가 영향력을 발휘하고 주목하는가에 대한 공적인 이미지와의 관계 그리고 미술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인 환영에 대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다층적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그의 작업이 단순히 디지털 이미지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시각 이미지의 궤적에 관심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가시적인 관계의 궤적

요한한은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작업을 펼쳐내는 작가이다. 하지만 퍼포먼스는 일시적이며, 즉시성을 가진다. 따라서 보통은 이를 기록하는 영상 작업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단순한 기록에서 벗어나 SNS 접속을 통해 실시간으로 관객과 다른 퍼포머들과 소통하며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그가 보여주는 설치 작업은 온몸으로 직접적인 경험하는 퍼포먼스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소통 방식과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온라인의 다양한 디지털 소통 방식 다시 말해 비대면의 방식을 연결시켜 활용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퍼포먼스가 아니라 <전례 없는 협주곡>이라는 제목으로 관객들의 신체 내부의 소리를 채집하여 공간에 배치한 스피커를 통해 그 소리를 들려준다. 이와 동시에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된 <무제-살>, <드러밍>, <크롭-에돌이>라는 이름을 가진 북을 벽과 공간에 설치하여 직접 관객이 북을 두드릴 수 있는 관객 참여형 작품을 선보인다. 이러한 작업은 그는 ‘나’의 행위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서로에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이러한 행위에서 비롯된 비가시적인 것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그의 관심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업에서처럼 시각적인 소통의 방식에 국한되지 않고, 촉각과 청각을 활용한다. 이는 어느 한쪽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문제적 의식을 소명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편에서 각자 익숙해지면서 동시에 잃어가고 있는 감각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두 가지의 방식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혼재된 시공간이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지금 여기에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견 대립하는 소통의 방식으로 보이는 이러한 관계 사이에서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연결되며, 어떤 새로운 관계를 맺을 것인가?라는 소통과 관계의 방식에 대한 전환적인 생각이 필요하다. 따라서 작가는 우리에게 근원적인 소통의 방식은 무엇인지를 그리고 이는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를 작가는 퍼포먼스와 음향 설치, 그리고 북의 제작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는 관계의 궤적을 통해 우리에게 몸으로 사유할 수 있는 시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작가에게 있어서는 사람과 사람 혹은 사람과 도구, 사람과 자연의 다층적인 관계를 시각화하며, 그 안에서 자신만의 균형을 잡으려 하는 작가의 태도를 보여준다.

회화적 행위의 궤적

정석우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Organ Valley 4/36>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연작이다. 36개의 분할된 이미지는 단계를 거듭하면서 4개 단위의 이미지로, 그리고 다시 9개 단위의 이미지로 덧씌워지게 되며 마지막에는 하나의 이미지만이 남게 되는 방식이다. 이러한 개별의 것들을 다시 그 위에 그려가면서 자신의 회화적 행위들의 궤적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며 공명의 흔적을 남긴다. 여기서 처음에 그려진 이미지는 다음 이미지를 위한 연결되는 단서를 제공하며,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화면의 밑에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중첩되는 방식으로 어떤 구체적 이미지로 시작되지만, 점차 강렬한 색과 작가의 움직임에 의해 자연스럽게 추상적인 표면을 가지게 된다. 이 거대한 연작에서 시각적으로 먼저 인식되는 것은 작가의 몸과 붓으로 이어지는 움직임의 궤적이다. 여기에는 색과 질감의 표현과 함께 경계선에 대한 긴장감, 효율적인 움직임과 같이 자신의 작업에서 고민하는 여러 요소에 대한 흔적들이 드러난다. 이번 전시에서는 선보이지 않지만, 작가가 생각하는 회화를 만들기 위해 작품을 자신이 설계한 건축구조물에 설치한다. 이러한 구조물들은 그의 작업을 더욱 극대화하는 역할과 분위기를 연출한다. 하지만 그의 넓은 화면과 구조물은 자유로운 붓의 움직임과 표현을 위한 장치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작품을 보는 관객이 작가의 의도를 쫓기보다는 자신만의 시각으로 이미지를 재구성하여 보기를 바라는 의도가 동시에 담겨있다. 그렇기에 여기서 작가의 회화적 행위의 궤적은 자신의 흐름을 따라오게 만드는 단서가 아니라 이를 방해하기 위한 도구로 볼 수 있다. 또한 이번에 새로 선보이는 야외에 설치된 <Circularcell>은 원형에 그려진 그림이 작품 뒤에 설치되어 있는 바람 주머니를 통해 바람이 불면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형태를 보여준다. 이러한 방식은 회전운동으로 인해 위와 아래가 없는 시시각각의 변화가 생기며, 이는 시선의 다중화를 이끌어 낸다. 이는 작가가 통제할 수 없는 우연적인 자연의 바람을 사용하기에 이전의 작업보다 자연스러운 어긋남을 유발한다. 그렇기에 작가의 회화적 행위의 궤적에 한층 더 말랑하고 유동적인 자유로움이 더해져, 그 경계를 더욱 모호하게 만들고자 하는 그의 태도가 엿보인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이번 《궤적들》에 참여하는 김윤섭, 김현석, 요한한, 정석우의 작품은 각자의 활동이 보여주는 다양한 시각적인 궤적이 서로 연결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면서 다층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자신들의 궤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관객이 자신만의 새로운 시각을 획득하고 경험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기에 관객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보면서 계속해서 질문하고 사유하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관객의 자세가 필요하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작가가 보여주는 것만을 따라가기만 하는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관객 스스로가 자신의 궤적을 되돌아보고 ‘너’ 혹은 ‘우리’의 궤적이 조우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