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축적으로 체현되는 자연과 수묵의 표정
주지하듯 수묵은 대단히 오랜 역사를 지닌 조형방식이다. 이러한 역사성은 바로 동양회화 전통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에 걸쳐 발전하여 성숙된 수묵은 대단히 풍부한 조형경험들을 축적하며 그 자체가 형식이자 내용을 이루는 독특한 조형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수묵의 전통성과 풍부한 조형경험은 서로 다른 해석과 이해를 유발하게 마련이다. 그 중 하나는 수묵은 전통시대의 심미관을 대변하는 것으로 이미 완성된 형식이라는 인식이다. 이에 반하여 수묵은 대단히 풍부한 조형적 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것이기에 그만큼 재해석과 재발견의 여지가 많은 전통의 보고라는 이해가 바로 그것이다. 이 두 가지의 해석은 옳고 그름의 판단의 대상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현대라는 시공에서 전통과 현대라는 미묘한 접점을 여하히 인식하고 이해할 것인가에 따른 해석에 따른 선택일 뿐이다.
작가 강호생의 작업은 전적으로 수묵을 지지체로 하고 있다. 화면 가득히 넘쳐나는 수묵의 기운은 그의 지향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고, 또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다. 언뜻 부분적으로 형상이 드러나는 듯 하지만 그에 앞서 화면에서 발현되는 것은 무구이라는 극히 전통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재료의 강한 물성의 표출이다. 그것은 형상, 혹은 조형이나 표현과 같은 관념적인 해설을 넘어서는 것으로 수묵을 통해 목적하고 추구하는 바에 육박하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은 세세하고 부분적인 곳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수묵 자체의 물성과, 그 것이 이루어내는 표현을 여하히 조형으로 수렴하여 안착시킬 것인가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의지를 견인하고 구체화하는 것은 바로 물의 속성이다. 그의 작업에서 물은 단순한 수묵의 매개라는 소극적인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며 내용이고 실질인 셈이다.
작가의 화면은 물에 대한 민감하고 섬세한 관찰과 반응으로 점철되어 있다. 스미고 번지는 물의 속성이 시간의 변화에 따라 표현해내는 물리적 변화를 포착하여 그 표정을 화면에 담아내는 그의 작업을 결국 시간을 축적하는 것이다. 시간은 물이라는 물성을 통해 대단히 풍부하고 우연적이며 비정형적인 흔적들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무작위의 성질을 지니고 있는 작가는 섬세한 관찰과 시간의 경영을 통해 그것을 자신의 조형으로 수렴해 낸다. 이는 단순히 조형적 기능이 아니라 전적으로 작가의 안목과 선택에 의해 포착되는 순간적인 것이다. 이는 물, 혹은 수묵이라는 재료가 지닌 독특한 물성과 시간이라는 자연, 그리고 작가라는 인간이 어우러져 이루어지는 이러한 조형 방식은 분명 전통적인 수묵의 표현이나 심미관과는 일정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작가가 다분히 전통적인 수묵이라는 재료를 통ㅎ 자신의 개성을 발현하고 자신이 속한 현대라는 시공을 반영하고자 한다는 작업의 핵심일 것이다.
작가의 화면은 모호하고 몽롱하다. 그것은 마치 혼돈과 무질서의 세계와도 같은 물의 흔적들로 이루어진 무작위의 집적이다. 특정한 사물을 묘사하거나 표현하지 않고, 물의 흔적을 따라 맺혀지는 물방울을 통해 무작위의 혼돈에 질서를 구축해 나가는 그의 화면은 물리적인 화면의 크기에서 벗어나 스스로 증폭되며 확장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물방울의 섬세한 묘사는 무작위의 방만함을 작위의 질서로 수렴하는 최소한의 수단인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물방울의 형상 역시 몽롱한 이중적 구조로 표현되어 여전히 유동하며 변화를 이뤄내고 있다. 극히 섬세하지만 이중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는 그의 화면은 이러한 몽롱함과 시각적 착시를 통해 물이라는 물질을 빌어 축적한 시간이라는 자연을 조형으로 수렴해 내고 있는 것이다.
수묵과 같이 전통성이 강한 재료의 운용에 있어 늘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계승과 발전의 문제이다. 이는 어쩌면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의 경우 전통적인 가치와 원칙들을 준수하기 보다는 주관적 해석과 개성의 표출을 통해 수묵의 새로운 표정을 모색해 보고자 함이 여실하다. 한지나 화선지 같은 전통적인 재료는 일필에 의한 일회적 표현을 전제로 한 것이다. 작가의 경우와 같이 시간의 차이를 두고 변화하는 수묵의 물성을 수렴해 냄에 있어서는 반드시 적합한 수단이라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에 작가는 두텁고 고른 결을 지닌 천을 선택하고, 필선에 의한 조형이라는 원칙에서 벗어나 분방한 발묵으로 수묵의 심미를 표출해내고 있다. 이러한 천의 특성은 화면가득 습윤한 물의 향연을 연출해 내며 한없이 유동하는 물성의 독특한 맛을 배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수묵, 특히 물의 작용에 관심을 두는 것은 분명 물질적인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니고 있는 함의는 단순히 수묵, 특히 물(水)이라는 물질 자체에 머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을 통해 이러우지는 무수한 변화와 무작위의 현상들은 단순한 물질의 특성이라는 제한적 의미로 해석하기 보다는 자연의 또 다른 모습으로 이해함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작가는 어쩌면 자연이라는 무작위와 조형이라는 작위의 병열과 조화를 통해 자연과 인간이라는 대단히 오래되고 본질적인 관계에 대해 성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묵이 지니고 있는 전통성과 물성은 바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인 접근 방식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차용된 것이며, 이에 대한 주관적 해석을 통한 독특한 표현은 바로 자신이 속한 현대에 있어서의 인간과 자연에 관한 성찰의 보고서인 셈이다. 수묵은 필법(筆法)에서 비롯되어 묵법(墨法)으로 숙성되고, 수법(水法)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기 마련이라는 예 화론의 이야기는 소재나 표현의 참신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과 사유의 내용을 강조하는 것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 작가의 독특한 작업은 분명 주목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작위라는 조형으로 상징되는 현대와 무작위적인 자연에 대한 성찰에 바탕을 둔 전통이라는 민감한 경계에서 한 걸은 더 내딛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 김상철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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