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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호의 ‘살아있는 풍경’

청주 쉐마미술관의 백승호 개인전 <디멘션 콤플렉스(Dimension complex)>는 시의적절한 기획이었다. 왜냐하면 2018 평창 겨울올림픽 폐회식에 등장했던 ‘기원의 탑’ 표절 사건의 팩트(fact)를 보여주는 기획이기 때문이다. ‘기원의 탑’은 백승호 작가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철사로 만든 한옥 지붕의 선에 LED 조명을 설치해 아름다운 한국미를 표현해 놓아 큰 호응을 받았다.

필자는 평창 겨울올림픽 폐회식에 등장한 ‘기원의 탑’을 보고 ‘백승호의 작품이 드뎌 평가 받는구나’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백승호는 ‘기원의 탑’을 자신이 직접 제작한 것이 아니란다. 더욱이 그는 평창올림픽 측으로부터 사전에 어떠한 연락도 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기원의 탑’은 한 마디로 백승호의 작품을 ‘표절’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원의 탑’을 제작한 관계자는 모 방송사 인터뷰에서 “이전에 백 작가를 알지 못했고, 야외 경기장을 고려해 그런 작품을 만들었다”고 시치미를 땠다. ‘저작권 침해’임에도 불구하고 거대 기업인 이벤트 업체가 배수진을 치고 있으니 개인 작가의 ‘항변’은 바위에 계란 던지기였다. ‘표

절 사건의 결론이 어떻게 났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백승호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기원의 탑’ 제작과정을 추적하다 보니 맨 끝(위)에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대형 이벤트업체가 있더군요. 따라서 하청 받아 탑을 제작한 분 역시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문제제기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께서 쉐마미술관의 백승호 개인전을 방문해 그의 작품들을 직접 본다면 ‘기원의 탑’이 백승호의 작품을 ‘표절’한 것임을 한방에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번 개인전에 한국 전통건축의 지붕과 탑을 모티브로 제작하기 시작했던 2003년 초기 작품부터 신작에 이르는 작품들을 전시해 놓았다. 그리고 그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전시하지 않았던 드로잉 작품들도 전시했다. 따라서 이번 백승호의 개인전은 그의 작품세계를 한 번에 조망할 수 있는 전시인 셈이다.

2003년 11월 백승호는 서울 종로구 제일은행 본점 로비에 <Dimension complex-庭園>이란 타이틀로 첫 개인전을 개최했다. 당시 그는 철사로 제작한 한옥 지붕과 화분을 공중에 부유하듯 설치해 놓았다. 다음 해인 2004년 그는 동국대 수영장 옥상에 ‘화이트 박스(갤러리 반)’을 제작해 일명 ‘지붕’ 작품을 마치 한 폭의 수묵화처럼 연출해 놓았다.

그 설치작품은 쉐마미술관 전시장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파티션으로 제작된 회색공간에 ‘정원'(2003/2018)이란 타이틀로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재-연출되어 있다. 철사들로 만들어진 지붕은 선들로만 표현되어져 있기 때문에 ‘여백’이 졸라 많다. 따라서 관객은 ‘여백’을 상상으로 그려놓게 된다. 머시라 왜 백승호가 전통건축물에서 ‘지붕’만 표현해 놓았느냐고요? 그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전통건축에서의 지붕은 하부 공간구조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외부 조형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건축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조, 즉 인간이 공간 속에 흡입되고 동선을 맞추는 무엇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다. 이것은 건축의 기능적 측면보다는 관념적 측면을 중시한 형태라고 본다. 우리는 지붕을 항상 멀리에서만 주시하거나 머리를 들어서만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면에서 나는 지붕을 통하여 좀 더 이상주의적 관념으로 접근하여 작업을 진행해보고자 한다.”

쉐마미술관의 백승호 작품들은 절묘하게 연출되어 있다. 따라서 관객이 세심하게 관찰한다면 흥미로운 점들을 알게 될 것이다. 뭬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달라고요? 우선 백승호의 ‘정원’ 오른편으로 들어가면 전시공간에 부유해 있는 붉은 선(철사)들로 제작된 독특한 지붕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작품 뒤편의 벽면에 청색 선(철사)들로 만들어진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자, 우선 ‘구멍’이 숭숭 뚫린 백승호의 ‘지붕’들을 보자. 그것은 입체도 아니고 평면도 아니면서, 입체이면서 동시에 평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평면/입체라는 전통적인 양식 구분(경계)를 해체시킨다. 필자는 그의 작품을 일종의 ‘3차원적 공간 드로잉’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자, 이번에는 벽면에 설치된 백승호의 마치 3차원적 공간에 드로잉 한 지붕을 납작하게 찌그러트린 것처럼 보이는 평면작품을 보도록 하자. 그런데 ‘납작하게 찌그러진 지붕’은 어떻게 제작된 것일까? 벽면

에 설치된 ‘납작하게 찌그러진 지붕’은 어떤 상황을 표현해 놓은 것일까? 백승호의 답변이다.

“천장에 설치한 지붕들에 조명을 비추어 생긴 그림자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벽면에 설치된 구멍이 숭숭 뚫린 작품은 평면이 아니라 마치 부조처럼 가운데 부분이 돌출되어 있잖은가. 이를테면 작품의 가운데 부분이 마치 입체 테이블처럼 돌출되어 있다고 말이다. 백승호의 답변이다.

“지붕들을 설치하고 조명을 지붕들 위에서 비추어 그림자를 만들었지요. 그런데 그림자가 생긴 곳이 바로 저의 작업대 위였습니다. 입체 작업대에 생긴 그림자를 그대로 제작한 것이죠.“ 오잉? 그런데 작업대 높이가 최소 60cm가 넘을 텐데 벽면에 설치된 구멍이 숭숭 뚫린 작품의 부조 두께는 20cm도 되지 않잖은가?

“조명을 지붕들 위에서 비추어 작업대 위에 그림자를 만들었더니 작업대 위를 벗어난 그림자가 있더군요. 그래서 작업대 약간 밑에 합판을 설치해 작업실 바닥에 떨어진 그림자를 작업대 약간 밑에 만들어 놓았지요.”

따라서 백승호의 벽면에 설치된 작품은 평면도 아니고 부조도 아니고, 평면이면서 동시에 부조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평면/부조라는 전통적인 양식 구분(경계)를 해체시킨다. 백승호는 이 작품을 ‘그림자 드로잉(Shadow Drawing)’(2013)으로 명명한다.

“완성된 입체는 빛으로 인해 그림자를 만들고 그림자는 평면에 필연적 그림을 그린다. 나는 이 필연적 그림을 쉐도우 드로잉(Shadow Drawing)이라 명명하고 물질로 재현한다.” 이번 백승호 개인전에 독특한 ‘그림자 드로잉’ 작품들도 전시되었다.

하나는 법주사 팔상전을 모델로 작업한 ‘그림자 드로잉’이고, 다른 하나는 옛 뚝섬 사진을 모델로 작업한 ‘그림자 드로잉’이 그것이다. 우선 법주사 팔상전을 모델로 작업한 ‘그림자 드로잉’을 보면 철사로 그린 드로잉과 바로 그 철사로 그린 드로잉으로 생긴 그림자가 마치 연필로 그린 드로잉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게 한 몸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흥미롭게도 백승호는 이번 전시에 2015년 법주사 팔상전(法住寺 捌相殿)을 직접 보고 연필로 그린 드로잉도 전시했다. 그의 드로잉은 우리나라 유일의 목조 5층탑을 석탑의 옥개석이라고 할 수 있는 기와지붕과 지붕의 그림자만 그려져 있다.

그렇다! 백승호의 철사로 그린 ‘그림자 드로잉’(2018)은 바로 연필로 그린 드로잉을 모델로 작업한 것이다. 그런데 그의 ‘그림자 드로잉’은 연필로 그린 지붕의 그림자를 절묘하게 철사로 그린 드로잉의 그림자로 연출해 놓았다. 그런데 철사로 그린 드로잉의 그림자가 지나가면서 중얼거렸듯이 그림자처럼 보이지 않고 벽면에 직접 그려진 드로잉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자, 이번에는 옛 뚝섬 흑백사진을 모델로 작업한 ‘그림자 드로잉’을 보자. 백승호는 안도현 시인의 <백석평전>에 실린 옛 뚝섬 흑백사진을 참조했다고 한다. 백승호의 ‘뚝섬1’(2016)은 벽면에 약간의 간격을 두고 철로 드로잉을 한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 철 드로잉은 벽면에 독특한 그림자를 만들어 환

상적인 풍경을 그려놓았다.

그런데 백승호의 이번 개인전에는 ‘뚝섬2’(2016)라는 드로잉 작품도 전시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종이에 연필로 그려진 드로잉이 아니라 나무에 마치 불로 지져 표현한 것처럼 보이는 드로잉 작품이었다. 이 드로잉 작품은 어떻게 제작된 것일까? 백승호의 ‘지붕’은 철사들을 일일이 한 땀 한 땀 바느질 하듯 용접해서 제작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철사와 철사를 용접할 때 합판을 바닥에 깔고 작업한다. 머시라? 이미 감 잡았다고요? 엄지 척!

자, 이제 백승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경천사지 10층 석탑을 모델로 작업한 ‘디멘션 콤플렉스-파고다(Dimension complex-Pagoda)’(2012)를 보자.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경천사지 10층 석탑은 기단부 3층, 탑신부 10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백승호는 기단부를 제외한 탑신부에서 옥개석(지붕)들만 철사로 제작해 놓았다. 그런데 경천사지 10층 석탑은 3층까지는 기단과 같은 아(亞)자 모양이지만, 4층부터는 정사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백승호의 ‘디멘션 콤플렉스-파고다’ 역시 3층까지는 사면돌출 형으로 제작되어 있다.

3차원 공간에 철사로 드로잉 한 ‘디멘션 콤플렉스-파고다’는 조명과 함께 환상적인 그림자를 만들어 놓는다. 그런 까닭에 관객이 움직일 때마다 공간 전체가 변화한다. 이를테면 철사로 만든 ‘지붕’들만 시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지붕’들은 ‘지붕’들로 공간에 만들어진 ‘그림자’들과 함께 변화한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백승호의 ‘디멘션 콤플렉스-파고다’는 다차원(multidimensional)을 품은 작품이 아닌가?

백승호의 ‘디멘션 콤플렉스-파고다’는 마치 집 밖의 풍경을 빌리는(借景) 한옥의 창처럼 작품 밖의 공간 전체를 빌린 작품이다. 여기서 말하는 ‘빌린다’는 전시기간 동안 공간을 빌린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그의 ‘디멘션 콤플렉스-파고다’는 고정된, 절대적인 작품이 아니라 장소(공간)에 따라 변화한다. 이를테면 그의 작품은 전시공간이 바뀔 때마다 다른 풍경으로 나타나게 된다고 말이다.

우리 선조는 집 안에 앉아서 창과 문을 통해 다양하게 변하는 풍경을 즐겼다. 그런데 그 경치는 그림으로 재현한 ‘풍경화’가 아니라 살아있는 풍경이다. 그런데 백승호의 ‘디멘션 콤플렉스-파고다’는 한 술 더 뜬다. 그의 작품은 관객을 작품 안에서 거닐게 한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은 살아있는 관객이 작품 안을 거닐 때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그의 ‘디멘션 콤플렉스-파고다’는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는 일종의 ‘살아있는 풍경’이 아닌가?

글, 류병학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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