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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 화백 추모전 ‘빈곳채우기’

참여작가 : 김영배, 박봉춘, 백준기, 손기환, 신중덕, 엄기홍, 유근영, 유인수, 임영택, 정장직, 최수화, 홍맹곤, 홍민표, 황용익
전시 기간 : 2009년 11월 6일 ~ 2009년 11월 20일 (월·화요일 휴관)
전시장소 : 쉐마미술관



전시내용

‘빈곳 채우기/Filling the Empty’
-고 김영배 화백 10주기 추모전’ 에 부치는 글-

지난 8월 13일, 지루한 여름 우기가 걷히고 폭염의 뙤약볕으로 30도를 오르내리는 동삼공원 묘원의 8부 능선에서는 고 김영배 선생님 10주기 추도식이 있었다. 김 선생님의 유족과 더불어 그와 각별히 교류했던 동기 분들과 선후배, 그리고 제자들 약 30여명이 참석한 조촐한 자리였다. 그날은 특별히 그의 동료들이 마련한 화비(畵碑) 제막식을 겸하는 자리여서 더욱 뜻 깊은 추모의 장이 되었다.

그날의 제례 진행 중 의례적이면서도 낯설어야만 했던 풍경을 몇 자 적어 보려 한다. 오전 11시 20여 분을 넘기면서 묘지 앞의 조그마한 상석 위에는 하얀 국화꽃 한 다발과 함께 여름 과일들과 어포, 그리고 평소 그분이 매우 좋아하셨던 소주 한 병이 놓여 있었다. 한국의 늦여름 풍치와 더불어 여느 추도식과 별다를 게 없는 차림이었다. 사회자의 진행 순서에 따라 유족들의 분향에 뒤이어지는 동료 선후배, 제자들의 제례가 이어졌다. 그리고는 박 선생님과 김 선생님이 각기 고인에 대한 생전의 미담을 기억하고 아쉬워하며 반추하는 내용의 헌시 낭송이 이어지는 중에, 필자는 이것이 우리네 마지막 풍정이자 습속이 아닐까 하는 삿된 기우의 마음을 잠시 갖게 되었다.

이웃에 대한 배려심도, 상대방에 대한 겸손함도, 그렇다고 화가 스스로의 자존과 기개를 지키지도 못하면서, 상스럽고 천박한 품성까지도 서슴없이 노출하는 오늘날의 일부 미술인들을 보노라면 더욱 그의 온후하고 소탈했던 풍모가 그립다. 돈과 상업주의에 물들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그림, 그리고 싶은 심정과 대상만을 다루는 화가들이 드문 시절, 그는 한사람의 화가이자 교수이기도 했지만, 동료들의 사표가 되는 인격자이기도 했다. 아마도 우리의 미술 현실에서 “이상하지 않은 사람”은 한참을 더 기다려야만 다시 오지 않을까? 지금도 차도의 건널목 건너편의 신호등 밑에서 낡은 가죽가방 옆에 끼고, 비스듬히 서 있는 그의 환영을 만나는 필자는 운이 좋은 게 아닐까?

김 선생님이 훌쩍 떠나신지 10여년이 지난 지금, 이상하지 않은 보통사람들이 얼마나 드문 세상인지를 절감하는 처지가 이 글을 쓰는 필자만의 특별한 소회는 아닐 것이다. 착한 사람, 점잖은 사람, 이상하지 않은 사람, 모주, 팔도지리지에 능한 사람 등으로 항상 그의 이름 앞에 따라 붙던 수식어들이 그립다. 유난히도 섬세한 감수력과 장인적인 기능을 소유한 그는 평소, “좋은 그림이란 붙이기와의 싸움” 이라고 면적께 표명하던 그의 예술관에 공감했고, 파렴치한을 몹시 싫어했으며, 따뜻한 마음을 상시 견지해 왔던 그의 모습에서 배운 바 크다. 술집에서 우리가 내려놓는 빈 소주병 숫자에 놀라 구경하던 옆 테이블 손님들의 어처구니 없어하던 표정에 필자는 지금도 웃음을 짓게 된다.

고인의 기하학이 있는 풍경과 익명의 인물들, 그리고 만화적 판타지의 제스처들이 새삼스럽다. 실상 그의 작품은 198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의 다원주의적 모색과도 상통하는 일면을 지니고도 있다. 그 역시 회묘적인 마티엘의 공간구성으로부터 그리드의 평면해석에 이르기 까지 폭넓은 관심과 미학적인 탐문을 보인 바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1990년대부터 만화와 회화의 접점을 모색했던 제 1세대로서, 드물게 만화와 회화에 관심을 보였던 이른바 ‘미술 속의 만화, 만화 속의 미술’을 실천에 옮긴 작가이다. 특히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창틀의 프레임과 의자, 메카닉한 익명의 인물들, 그리고 만화 기호와 동작선 들은 시각에서 지각으로의 기호론적 회화론의 탐색을 열어 보인 선험적인 일면을 지니고도 있다.

평소 연구실에서 틈틈이 보태는 작품제작을 유난히 즐겨서, 장지 위의 아크릴 착색은 그의 전매품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견 그의 작품은 기하적인 감수력과 더불어 대상 사물과 사건의 에센스와 스키마(도식)를 드러내려는 과정이었으며, 도달점은 항상 공허하고 쓸쓸한 ‘텅 빈’ 곳이었다. 오자와 세이지를 닮은 외모 덕에 일찍이 우리는 그에게서 황량한 디지털의 ‘솔베이그’를 들을 수 있었다.(그는 「빈곳 채우기」란 저술을 낸 바 있으며, 음악도 좋아하긴 했으나 음치였음)

여기 고인의 작품과 더불어 그를 기리는 14인의 그림들을 모아 추모전을 마련했다. 마침 동료 중 한 분이 미술관을 개설하여 개관전의 후속 프로그램으로 추모전을 연다하니, 참으로 보기에 좋은 것은 특정 개인의 심사를 극복하는 미술일반의 보편성을 지향하는 휴먼 스케일의 규모와 노정일 것이다. 진열된 그림은 각기 지향점이 다르지만 모두가 그를 기리는 마음은 하나같이 아쉬운 추모의 정을 담고 있다. 아마도 이런 동료들의 미담은 당분간 듣기 어렵질 않겠는가?

끝으로 이 전시를 위해 애써주신 고인의 유족들과 동기 분들, 선후배 동료들과 제자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우리 시대의 문화 수호자이며, 동시대 미학의 증인이자 목격자들인 미술인 모두의 행운과 건재를 빈다.

2009.10 J.K.Ba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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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전시